NHK 홍백가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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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연말 가요제.
시청률 및 화제성 면에서 일본 음악 방송 중 단연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슈퍼볼''''이라고도 불린다. 일본 가수들에게는 일본무도관 콘서트[2] 와 더불어 인기 가수로서의 척도로 평가받기 때문에, 가요계 내 커리어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2. 상세
매년 12월 31일 도쿄 시부야 NHK 홀[3] 에서 일본의 가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홍백팀 대항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대형 가요 프로그램이다. '''홍백'''인 이유는 이 빨간색과 하얀색의 조합이 일본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색조합이자 길(吉)함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4] 한마디로 새해에 가장 어울리는 색인 셈이다. 겐페이 전쟁에서 유래한 단어이기도 하다.
위의 이유로 홍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에서 나온 검도의 룰인 상대방의 점수를 계산하기 위해 만든 홍백기에서 나온 것. 당시 프로듀서가 검도부인 탓으로 간부에게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만들어진 제목이다. 실제 일본인들도 이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12월 31일, '''홍백음악시합'''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애당초 명칭 또한 '''홍백가합전'''이었지만, 연합군 총사령부(GHQ)가 허가하지 않아서 시합으로 바꿨다. 호응은 대단히 좋았다. 하지만 당시는 같은 기획의 같은 포멧을 매년 한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무능하다는 증거로 여겨서 1회성 단발로 끝났다. 하지만 워낙 인기를 얻었기에 방송국은 연말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년 특별 프로그램으로 하면 되지 않겠냐며 1951년에 제1회 NHK 홍백가합전(第1回NHK紅白歌合戦)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같은 포멧으로 방송을 기획했다.
제1~2회는 라디오 방송을 했다. 제3회 1953년부터는 NHK가 TV방송을 시작한 해로, 텔레비전 중계를 개시하였다. 제3회까지는 1월 3일에 방영되었다가 제 4회부터 다시 12월 31일에 방영되어[5] 오늘까지 일본의 연말을 대표하는 국민 프로그램이 되었다. 1959년 아키히토 왕세자[6] 와 쇼다 미치코의 결혼식 중계와 1964 도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TV붐이 일고 나서 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 1982년부터는 다른 음악 방송의 흐름과 함께 가사 자막을 띄우게 되었다. 무려 60년이나 된 프로그램으로, 쇼와 시대부터 시작해 헤이세이 시대를 거쳐 레이와 시대에 이어지는 등 3시대를 거친 몇 안 되는 국민 프로그램.
보통은 저녁 7시 15분에 시작하여 밤 11시 45분에 종료하고 1부와 2부로 나뉘어 방송한다.
보통 그 해에 히트곡을 낸 가수들이 출장하며, 홍백가합전에 출전할수록 인기와 경력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홍팀(紅組-아카구미), 남성은 백팀(白組-시로구미)으로 구성된다. 다만 그룹의 경우는 리드보컬의 성별에 따라서 결정되며 듀엣의 경우는 나이, 데뷔 연도에 따라 홍팀과 백팀으로 갈린다. 승패는 게스트로 초대된 심사위원들[7] 과 시청자 참여로 결정된다. 현재까지 70번의 경기를 치뤄 양팀의 통산 전적이 과거엔 비등비등했지만, 최근 들어 백팀 쪽으로 기울어지고있는 추세. 역대 승률은 2020년 현재 백팀이 높다(39승 31패, 54.5%).[8]
가수들은 대부분 NHK 홀에서 노래를 부르지만, 1990년과 2002년 이후 야외 무대나 가수의 콘서트 도중 방송과 연결하여 무대를 여는 경우도 생겼다. NHK 홀이 아닌 다른 곳에서 노래를 부른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2002년 홍백가합전 당시 나카지마 미유키가 쿠로베 댐에서 <지상의 별>을 부른 경우[9] 와 동년에 히라이 켄이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열창한 경우가 있다. 2012년에도 후쿠야마 마사하루[10] 가 요코하마에 있는 콘서트장에서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MISIA도 중계로 노래를 불렀는데, 부른 장소가 무려 아프리카의 나미브 사막. 현지 아이들도 출연시켰다. 외국 가수 중에는 조용필이 바로 그 케이스인데 1990년 홍백가합전 당시 서울 롯데월드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열창한 전례가 있다. 실제로 NHK 홀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부른 것이 중계된 시점은 1990년부터이다. 그러나 1990년 당시 NHK 홀에서 노래를 부른 다른 가수들의 불만이 제기되는 바람에 1991년부터 2001년까지는 모든 가수들이 NHK 홀에서 노래를 불렀다. 더 정확한 이유는 1990년 베를린에서 중계로 출연한 나가부치 츠요시가 안 그래도 시간 분배가 팍팍한 상황에서 제 멋대로 3곡, 17분이나 불러제끼고 NHK 직원에게 욕설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2016년에는 런던에 거주하는 우타다 히카루를 홍백 제작진이 찾아가 중계했다.
피날레는 <호타루의 빛(蛍の光)>[11] 이라는 일본에서 주로 졸업식 등 마무리 노래로 많이 쓰이는 노래로 장식한다. 예외적으로 이듬해 1964 도쿄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던 1963년 제 14회 홍백가합전은 도쿄올림픽 찬가[12] 로 마무리되었다. 이듬해 올림픽이 다시 열리는 2019년에도 약간 다를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역시나 <호타루의 빛(蛍の光)>으로 마무리되었다.
홍백 양팀의 마지막 무대를 '''토리(トリ)''', 특히 맨 마지막 순서를 '''오오토리(大トリ)'''라고 한다. 이는 가수로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인기만으로만 아니라 경력과 품격 등을 갖추어야 설 수 있는 무대. 주로 관록 있는 엔카 계열 가수들이 맡는데 전설적인 가수인 미소라 히바리, 이츠키 히로시가 각각 13번의 토리에 나서는 영광을 안았다. 이외에도 미나미 하루오, 이시카와 사유리, 키타지마 사부로도 토리를 다수 맡은 바 있다.[13] 예외가 있다면 1978년 제 29회 야마구치 모모에와 사와다 켄지의 토리. 원래 솔로가수 외에는 설 수가 없다는 관례가 있었는데 2003년 SMAP이 토리에 서면서 관례가 깨졌고 2012년에는 SMAP과 이키모노가카리[14] 가 나섰다.
참고로 참가하는 NHK 스태프들의 수당은 만원이며, 대본은 통째로 암기한다고 한다. 또한 참가한 가수들 모두에게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트로피를 준다. 모두가 열심히 싸웠다는 의미.
방송사에서도 홍백가합전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한두 달 전쯤부터 시작해 뉴스 시간에 홍백가합전 관련한 소식들을 내보내고, NHK 종합과 BS 채널 등에서는 홍백가합전에 나오는 일부 가수들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든지 아예 ROAD TO 홍백이라는 제목으로 별도의 스팟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한다.
2014년에는 NHK 측에서 직접 오퍼를 넣어 게닌 콤비 바나나맨을 홍백 선전부로 기용했다. 선전부장은 바나나맨의 시타라 오사무. 홍백 선전부로서의 활동으로, 2014년부터 지금까지 홍백선전부(紅白宣伝部)라는 생방송과 홍백 우라 토크 채널의 사회를 맡고 있다. 홍백선전부는 홍백 본방의 몇일 전부터 각기 다른 홍백 출연자들을 게스트로 불러 PR을 하는 생방송. 쿠보타 유카 아나운서가 함께 사회를 맡는다.
홍백 우라 토크 채널은 백스테이지 중계 시스템이다. 시스템 자체는 2010년 61회부터 생겨나서 테리 이토가 사회를 맡고 있었지만, 주목을 받은 것은 2014년 65회부터 홍백 선전부인 바나나맨으로 사회가 바뀐 이후이다. 시청자와 같은 입장에서 공연을 보며, 호응하고 자유롭게 토크를 진행하는 바나나맨의 입답에 힘입어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부모님 세대는 시끄럽다며 부음성을 듣지 않는 편이라지만, 젊은 세대는 바나나맨의 우라 토크로 인해 홍백을 전부 챙겨보게 되었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 한 스포츠지에서는 바나나맨을 홍백의 숨겨진 MVP라 칭하며, 본공연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진행과 시청자의 시선에 맞춘 토크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모았던 것이라며 아주 호평했다. 물론 너무나도 자유롭게 토크하는지라 일부 시청자에게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함께 사회를 진행한 쿠보타 유카 아나운서조차 “정말 노래를 듣고 싶은 분들은 부음성을 듣지 않을 것이니 괜찮다” 라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장려하기도 했다. 듣는 방법은 리모콘으로 부음성으로 전환하거나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다.
참고로 우라 토크의 중계석은 객석의 뒤쪽에 위치해 있어서 가끔 아는 가수들이 공연 도중 바나나맨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하는데, 그때의 음성을 들어 보면 좋아서 난리를 치는 것을 알 수 있다.[15]
3. 시청률 및 인지도
홍백가합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청률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시청률은 40%대로 상당히 높다. (2013년도 44.5%) 시청률만 두고 본다면, 가히 일본의 슈퍼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인지도는 설명이 필요 없다. 일본의 국민프로그램으로서 대개 그 해 히트한 곡이 있는 가수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외적으로 아예 그냥 인기가수의 급을 뛰어넘어 국민 가수 정도의 위치에 있어서 한 해의 흥행 성적은 신경 안 써도 되는 S급 가수들은 그 해 싱글이나 앨범을 내지 않아서 차트에 성적이 없었던 경우라도 그냥 나오는 경우도 있다.[16] 일본 가수와 팬들은 매년 11월에 홍백 연출 측에서 출연 제의가 오는지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제안을 받아들여 출연이 결정되면 이를 하나의 쾌거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신인이나 홍백에 첫 출연하는 가수들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일종의 성공의 척도. 물론 슈퍼볼과 다르게 프로그램 시작전후나 중간 광고를 삽입하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17] 광고주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 같은 프로그램이다.[18]
역대 최고 시청률은 1963년 방송하였던 14회로, 공식적인 조사치로는 81.4%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비공식 조사치로는 89.8%. 흑백으로 방송된 마지막 방송이자, 영상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회수이기도 하다. 출전
2000년대 들어서는 홍백가합전의 명성이나 의미가 많이 퇴색했고, 시청률도 떨어졌다. 1984년 78.1%를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세이며, 최근에는 40% 정도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른 방송 수단의 발달로 인해 지상파 TV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이 비단 홍백만의 문제도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방송 매체의 전반적인 흐름이고, 2010년대 일본에서 40%의 시청률을 보이는 TV 프로그램이 사실상 홍백 말고는 몇 없기 때문에 여전히 홍백가합전은 시청률로는 제일 가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즉, 일본 지상파 방송 최고의 프로그램이라는 상대적 위치는 유지하고 있으나, 시청률이나 관심도 등의 절대적 위치는 시대 및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하락세에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일부 소속사에서 아티스트를 홍보하기 위해 무리해서 출장을 시키는 경우도 많아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이벡스의 걸 넥스트 도어나 쟈니스의 NYC[19] , Sexy Zone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홍백가합전은 일본 대중음악계의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이다. 실제로 사회자나 출연자가 결정되면 그때마다 NHK에서 크게 보도되고, 여기에 출연하면 홍백 효과라 해서 가수의 음반 판매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3.1. 역대 시청률
4. 출전하는 가수들
일본 가수들에게 홍백가합전의 출전은 영예로 받아들여지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홍백가합전 출전을 하지 않는 가수들도 꽤 있다. 대표적으로 B'z, 차게 앤 아스카 등이 있다.[21] <작은 사랑의 노래>로 인디 아티스트로서는 이례적인 인기를 끈[22] MONGOL800은 홍백가합전에 출장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홍백가합전이 열리는 날 작은 라이브 하우스에서 콘서트를 진행하였다. 미스터 칠드런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출장을 사양하다가 2008년에 2008 베이징 올림픽의 테마송인 <GIFT>를 맡아서 한 번 출장했다. 한 번 출장했기 때문에 이후의 출장은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아무로 나미에, 라르크 앙 시엘 등.)
어차피 못 나오는 팀은 못 나온다. 예를 들자면, 더 드리프터즈. 전설이라 불렸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지만, 현역 시절엔 응원전에나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고 시무라 켄을 제외하면 다들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2001년에 딱 한 번 나왔다. 사실 1970년에 출장 제의를 받았고 실제로 출장할 예정이었으나, 카토 챠가 '''교통사고를 거하게 일으켜서''' 출장권을 자진 반납했다. (즉,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서 출장이 좌절되었다.)[23] 또 업프론트의 헬로! 프로젝트는 2007년 이후 한 번도 홍백에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모닝구 무스메마저도 홍백에 못 나온 지 5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 유명한 V6도 2014년에야 처음으로 참가할 정도.
옛날에는 바리톤 성악가 타치카와 스미토, 일본 3대 중창단인 다크 덕스, 듀크 에이세스, 보니 잭스 등 성악가들도 많이 출장했었다.
2020년 기준으로 남성 솔로 가수 중 이츠키 히로시, 키타지마 사부로[24][25][26] , 여성 솔로 가수 중 이시카와 사유리[27] , 남성 그룹 중 TOKIO[28] , 여성 그룹 중 더 피넛츠[29] , 혼성 그룹 중 DREAMS COME TRUE[30] 가 최다 출장을 기록했다.
4.1. 해외 가수의 출연
일본을 대표하는 연말 가요프로그램이다 보니 해외 가수가 출연하는 경우도 많다. 선발기준은 당해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가수들의 올스타전이지 국적이 아니기 때문. 일본의 문화개방성을 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이다.
4.1.1. 한국 가수의 출연
1987년에 우리나라 가수로서 조용필이 최초로 출연해서 1990년까지 4회 연속 출연했다.[31] , 1988년에는 계은숙이 출연해서 1994년까지 7회 연속 출연.[32] 1989년에는 김연자[33] , 패티김[34] 이 출연했다.
2002년에는 보아[35] , 2004년에는 이정현[36] , 류[37][38] , 2005년에는 임형주[39] , 2008년에는 동방신기[40] 가 출연했다. 2011년에는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까지 3팀이나 출연하였다.[41]
그러나 2012년부터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이명박 대통령 천황 사과 요구 사건으로 한일관계가 급냉각되고 일본 내 반한 감정의 고조, 한국의 음악이 이전만큼 일본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한국 가수들은 2016년까지 홍백가합전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7년 11월 15일 오후 5시 13분, NHK 홍백가합전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라인업에 TWICE의 이름이 올라오면서 6년 만에 한국 가수가 홍백가합전에 출연하게 되었다.[42][43]
2018년 역시 TWICE가 참가하면서 2년 연속 출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MBC 가요대제전 무대는 비공개 사전 녹화로 진행되었다.[44]
2019년에는 징용 배상 문제 및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사태 촉발로 한일관계가 다시 급냉각되었다. 그러나 TWICE의 3년 연속 출장이 확정되었고, 역시 MBC 가요대제전에서의 TWICE 무대는 사전 녹화로 진행되었다.
2020년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한국 가수들이 직접 NHK 홀에서 무대를 펼칠 수가 없게 되었고[45] , 따라서 2020년에는 한국 가수가 출연하지 않는다.
4.2. 서브컬쳐 계열 가수들의 출연
오타쿠 문화가 대두된 이후로 홍백에는 매년마다 애니송, 오타쿠 관련 팀이 한두 팀씩 나온다. 요괴워치 같은 어린이용 애니나 마루코는 아홉살 같은 가족 애니는 매년 어김없이 나오며, 심야 오타쿠 애니가 나오는 경우는 좀 드물다.
1990년대에는 1991년 모리구치 히로코가 부른 기동전사 건담 F91 테마곡인 <ETERNAL WIND>나 1994년 시노하라 료코가 부른 스트리트 파이터 2 무비 테마곡인 <사랑스러움과 안타까움과 믿음직함과>[46] , 1995년 타무라 나오미가 부른 마법기사 레이어스 오프닝인 <양보할 수 없는 소원> 등이 나오기도 했다.
성우 출신 가수 중에는 미즈키 나나가 2009년에 최초 홍팀에 출전하여, 화이트 앨범 애니버전의 1기 오프닝 테마인 深愛를 부른 이래, 2014년까지 연속 출장하였다. 사실 2007년에 나카가와 쇼코가 나와서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오프닝 곡인 하늘빛 날들을 불렀으나, 나카가와는 '''성우 일도 종종 하는 탤런트'''인 데다 순수히 자력으로 출연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부상하던 오타쿠 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아키바 문화 특집’의 일환으로 출연한 것이었다. NHK 측에서도 성우 최초 출연은 미즈키 나나로 공인했다.
2013년에는 애니송 분야로 Revo 주체의 음악 프로젝트 그룹 링크드 호라이즌도 출전하게 되었는데, 무려 100명의 멤버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링크 호라이즌은 진격의 거인 주제가가 노래방 차트 1위에 오를 정도로 히트했기 때문에 나온 것.
2014년에는 겨울왕국 주제가인 <Let It Go>를 부르기 위해 원곡 가수이자 배우인 이디나 멘젤이 직접 나왔다. 외국 애니송으로는 홍백가합전 최초이지만, 디즈니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애니송과는 거리가 조금 있으니 예외.
2015년엔 아이돌 컨텐츠로 인기몰이 중인 μ's의 출연도 확정되었다. 난죠 요시노는 무릎 부상 및 fripSide 스케줄로 인해 불참하였다.
2018년에는 러브라이브 선샤인의 Aqours의 출연이 확정되면서, 3년만의 애니송 가수로 러브라이브 시리즈의 그룹들이 2번 연속으로 출연하는 쾌거를 안겼다.
2019년에는 LiSA의 출연이 확정되었다. 2020년에도 2년 연속 출연이 확정되었다.
2020년에는 YOASOBI가 첫 출연했다.
5. 역대 홍백가합전
6. 역대 우승팀
7. 사건사고
7.1. 홍백가합전 가면라이더 사건
7.2. 홍백가합전 DJ OZMA 노출 사건
8. 여담
- 홍백(紅白)이라는 단어는 겐페이 전쟁에서 유래한 단어로, 헤이안시대 말 겐씨와 헤이씨가 두 패로 갈라져서 전쟁을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 전쟁에서 源(미나모토)씨는 흰 깃발을 사용하고 平(다이라)씨는 붉은 깃발을 사용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실제로 홍백가합전은 두 집단으로 나눠서 경쟁을 하고 점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으로 되어있다.
- NHK 홍백가합전의 가(歌)가 훈독(うた, =노래)이라 간혹 ‘홍백노래합전’이라고도 불린다. ‘홍백가요대전’이라고 의역한 책도 있다.
- 1970년 홍백가합전의 토리 가수는 원래 미나미 하루오가 고려되었다고 한다. 당년도 만국박람회 테마송을 불렀기 때문. 하지만 모리 신이치의 ‘긴자의 여자’로 결정. 미나미 하루오도 가창곡을 ‘오다 노부나가’로 변경하였다.
- 제1회(1951년)~13회(1962년), 15회(1964년) 은 완전히 남아있지 않다. 13회는 일부 영상이 있다. 다른 회차의 경우 남아 있는 영상자료를 찾을 길이 없지만 당시 무대 사진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접할 수 있으며,[47] 제5~7회(1954년~1956년)은 일부가 짤려있지만 라디오 음성 대부분이 남아있고 8회 이후는 라디오 녹음 또한 남아 있다.
[1] 'NHK 홍백가합전' 공식 테마곡.[2] 일본무도관 콘서트는 일본 음악계에서의 본격적인 '''메이저 진입'''을 의미한다.[3] 1973년 제 24회부터.[4] 제일 대표적인 예가 일장기. 일본의 경우 운동회도 홍팀과 백팀으로 나눈다. 일본의 교육과정을 들여와 똑같이 운동회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전 일본에 대한 반감+북한으로 인한 레드 콤플렉스 등의 이유로 색깔이 청백조합으로 바뀌었다.[5] 이때가 NHK 홀이 생기기 이전이라 일본 극장을 무대로 빌렸는데, 하필 비는 시간대가 이날이었다고.[6] 125대 일본 국왕[7] 보통 탤런트나 스포츠 선수들, 유명인사들이 초대된다.[8] 2012년부터 3년 연속 백팀이 우승하다가 2015년, 2016년에 홍팀이 우승. 하지만 2017~2019년은 다시 백팀이 3년 연속 우승중이다. 10년~14년까지 백팀 사회를 맡은 아라시 등 보이그룹 팬들의 존재가 백팀에 힘을 실어 주는 요인.[9] 이때 시청률이 53.8%로, 2000년대 들어와서 조사한 시청률 중 가장 높았다.[10] 작년에 이어 2년 연속.[11] 원곡은 그 유명한 “오랫동안 사귀었던~”으로 시작하는 독립군 애국가로도 쓰였던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이다.[12] 東京五輪音頭(도쿄 올림픽 온도).[13] 단, 쇼지 타로처럼 출장 당시에 지나치게 원로인 경우는 토리를 맡지 않는다. 참고로 1960년대에 일흔이었던 사람이다.[14] <風が吹いている>를 불렸다. 이 노래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주제가(일본 방송에서 사용되는)였으며, 덕분에 NHK가 밀어 준 듯. 곡 마지막 부분은 사회자 및 다른 가수들이 나서서 같이 불렀다.[15] 여담으로 바나나맨이 오랫동안 칸무리 MC를 담당한(현재 진행 중으로 결성 초기인 2011년 8월부터 지금까지 약 6년 가까이 하고 있다) 노기자카46이 등장한 순간의 호응을 보면 정말 공식 오빠답게 노기자카를 생각해 주는 멘트들로 노기 팬들을 또다시 감동시킨다.[16] 가장 대표적인 예가 홍백의 상징으로 불렸던 키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郎)와 SMAP. 최근 마츠다 세이코도 이 포지션에 있다.[17] NHK는 자사의 프로그램 광고나 일부의 공익광고 정도를 제외하면 상업광고를 일절 편성하지 않는다. [18] 다만 1950~1960년대 일부 지방 방송국이나 오키나와 지역 방송국에서 홍백가합전의 방영권을 사들여서 홍백가합전 앞, 뒤에 자체적으로 광고를 삽입한 적 있었다고 한다. 물론 1970년대 이후로는 전혀 볼 수 없는 풍경.[19] 나카야마 유마, Hey! Say! JUMP의 야마다 료스케, 치넨 유리로 구성된 유닛.[20] 비디오 리서치 설립전으로 기록치 없음.[21] 두 그룹 모두 “연말에는 무조건 쉰다”는 원칙을 이유로, 홍백가합전에 출전하지 않는다.[22] 당시 앨범이 230만 장이나 팔렸고, 발매 10여 년이 지난 2013년까지도 일본 노래방 차트 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일본 펑크 록의 명곡으로 평가받는다.[23] 일부는 도리후의 장르가 코미디송이라서 못 나갔다는 생각하는데,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의 출장 횟수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크레이지 캣츠는 멤버였던 우에키 히토시의 단독 명의 출장까지 합치면 10번이 넘는다.[24] 총 50회 출장.[25] 역대 최다 출장[26] 참고로 키타지마 사부로는 출장횟수에서 제외되는 특별출연까지 합하면 51회 출연이다.[27] 총 43회 출장.[28] 총 24회 출장.[29] 총 16회 출장.[30] 총 15회 출장[31] 1990년 공연은 서울 롯데월드 현지에서 중계되었다.[32] 한국인 가수 중 최다 출연이다. 이전판까지는 조용필의 4회 기록을 보아가 깼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는 정말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서술이다. 이 정답은 미야자키 미호와 후지와라 토모키가 진행하는 한류 예능 프로그램 ‘한류라보’에서 “한국인 중에서 가장 많이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가수는?”의 주제로 문제가 출제된 적 있었다.[33] 1989년, 1994년, 2001년 3회 출연.[34] 1989년 출연. 길옥윤 작사, 작곡의 이별을 불렀다.[35] 2007년까지 6년 연속 출연.[36] 이병헌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어 출연했다. 일본에서의 공식 데뷔 무대가 홍백가합전이었다는 게 특이한 점.[37] 겨울 연가의 OST인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부른 가수다. 겨울 연가의 열풍으로 홍백가합전을 비롯한 일본의 각종 연말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38] 한국의 기레기들이 연말에 “올해 홍백가합전에 한국 가수 누가 출연할까?”를 주제로 기사를 쓰면서 류시원이 홍백가합전에 출장했다고 쓴다면 100% 이 사람이다.[39] 일본의 전설적인 여가수 마츠토야 유미 및 아시아 각국의 대표가수들과 함께 ‘Friends Of Love The Earth’라는 프로젝트그룹으로 출연했다.[40] 2008년, 2009년, 2011년 3회 출연.[41] 2010년에도 소녀시대와 카라의 출연이 유력했으나, 결국 출연 명단에 들지 못하였다.[42] TWICE는 한국 걸그룹이지만 대만, 일본 등 다른 나라 출신의 멤버들이 섞여있어 다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특히 일본인 멤버가 모모, 사나, 미나로 3명이나 된다. 이 점이 홍백가합전 출연에 있어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43] 이날 동시에 진행되는 MBC 가요대제전 무대에는 출연하나, 28일 사전 녹화 후 일본으로 갔다. 또한 리허설은 가요대제전 사전녹화 이후 29일 오전에 전세기를 타고 가서 리허설을 한 이후 '''다시''' 한국으로 날아와 KBS 가요대축제를 진행하고 '''또다시''' 일본으로 날아갔다.[44] 여담으로 해당 사전 녹화 무대는 자정 타종 행사 직후 방송되었는데, 부산 MBC와 대구 MBC 권역에서 지역 행사 타종 중계를 이유로 이 무대의 일부 혹은 전체를 자르는 일이 벌어지면서 해당 지역 팬들의 불만 민원이 폭주하는 일이 있었다.[45] 일본에서 2주, 한국에서 2주 총 4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을 가져야 하는 만큼 리스크가 크다.[46] 다만 애니송 가수로서의 출연보다는 '''1994년 오리콘 차트 싱글 3위에 여성가수 최초 투밀리언 달성'''라는 기록 때문에 출연했다고 보는 게 맞다.[47] 다만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회는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그때는 아직 홍백가합전이 인기가 없었기 때문.